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스날 FC (문단 편집) == [[영국 왕실]]과 아스날 == 영국 왕실인 윈저 가문에서 [[엘리자베스 2세]] 여왕의 선대부터 서포팅하는 클럽으로 잘 알려져 있다.[* [[웨일스 공 윌리엄|윌리엄 왕세자]]은 [[아스톤 빌라 FC|아스톤 빌라]]를 지지한다고 한다.] 아스날의 창립년도(1886년)를 생각해 보면 사실상 클럽의 태동기부터 팬이라고 볼 수 있다. 실제로 여왕이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팬이라고 버킹엄 궁전 공식 대변인이 밝히기도 했고, 하이버리에서 에미레이츠로 아스날이 구장을 옮긴 이후, 열린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개장 후 공식 개장 행사에서는 '''여왕이 직접 방문하려다''' 몸이 편찮아 부군 [[필립 마운트배튼]]을 대신 보내기도 했다. 또 아스날 선수들을 버킹엄 궁전으로 초대하고 선수들과 악수를 하며 팬들의 소원인 팬 미팅도 가졌다. 이는 UK[* 잉글랜드, 스코틀랜드, 웨일스, 북아일랜드] 축구 클럽 중 최초로, '''아직도 아스날 외에는 왕실에 초대받은 클럽은 없다.''' 심지어 트레블을 기록한 맨유나 런던 클럽 중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최초로[* 지금까지도 런던 클럽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첼시가 유일하다.] 차지했던 첼시도 버킹엄 궁전에서 초대장을 보내주지 않았기에 여왕을 알현할 수 없었다. '''1927년 4월 23일, [[조지 5세]][* [[제1차 세계 대전]] 당시 영국을 승리로 이끈 국왕이며 지금의 윈저 왕가가 영국에 존속하게끔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. 당시 대독 감정은 최악이었고 독일계였던 왕실은 가문명과 독일내 봉토, 권리까지 포기하면서 여기저기서 망해가는 유럽 왕가의 대위기를 극복했다.]가 [[영국 국왕]] 중 최초로[* 비공식적인 행사에선 14년 먼저인 1913년 7월 11일, 글래드스톤 선창 개막을 기념하기 위해 [[구디슨 파크]]를 방문하여 역사상 첫 잉글랜드 축구 경기장을 방문한 바 있긴 하지만, 축구 공식 경기는 이게 처음이다.] 아스날과 [[카디프 시티]]의 FA컵 결승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경기장을 방문해서[* 이 밖에도 영국 국왕 중 최초로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인사말을 육성으로 전했다.] 주장의 소개 아래 아스날 선수들을 격려하는 사진도 있다.''' [[http://mirrorfootball.mediastorehouse.com/image/preview_1664099.jpg|#]] 참고로 20세기 초반만 해도 [[프리미어 리그]] 문서에도 나오듯이 [[축구]]는 가난한 노동자 같은 하위 계층 스포츠로 무시당하던 시절이었기에 이는 엄청난 화제였다. 하지만, 당시 아스날은 결승전에서 휴 퍼거슨[* 1895~1930. 1929년 방출되자 1930년 1월 8일에 만 34세로 [[자살]]하고 말았다.] 에게 1골을 허용하며 결국 1:0으로 카디프 시티가 우승했는데 카디프 시티는 이후로 100년 가까이 Fa컵 우승이 없다. 더불어서 엘리자베스 2세의 모후이자 [[조지 6세]]의 왕비이자 퀸 마더 [[엘리자베스 보우스-라이언]]은 윈저 왕가에서도 아스날 팬으로 아주 유명한데, 그녀는 아스날의 전설적인 선수 중 한 명인 데니스 콤프턴의 열성적인 팬이었을 정도였다. 엘리자베스 보우스-라이언의 남편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인, 선왕 [[조지 6세]] 역시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아스날 경기를 보러 오기도 했고, 여왕의 할아버지인 [[조지 5세]] 역시 경기 결승을 위해 친히 방문해서 관전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